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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사리는 누구인가?

hyucks 2020. 2. 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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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볼을 즐겨봤다던 과르디올라, 그리고 마우리치오 사리

 

# 감독 데뷔 이전

 

마우리치오 사리는 1959년 나폴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대부분을 피렌체에서 보냈다. 그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아버지는 사리가 어렸을 때, 크레인 운전기사로 일하기 위해 이사했고, 가족들도 따라갔다. 사리는 필리네 발다르노 지역 공동체에서 자랐고, 아래층에 '바'가 있는 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거리에서 축구를 배웠다. 어느 소년들처럼, 그는 볼에 대한 재간이 타고나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는 축구의 전술적인 면, 분석적인 면에 더 매력을 느꼈다. 사리가 축구계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로컬 팀 'pedale figlinese'를 다니면서, 거의 사이클 선수가 될 뻔했다. 그의 아버지는 2년동안 프로 사이클 선수였다. 그러나 결국 사리는 축구를 선택했고, 지역을 대표하는 유소년 축구팀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 투스카니 학교에서, 그는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나폴리의 팬이었지만, 그의 열성적인 지지는 꺾지 못했다. 

 

팬들과 함께 하는 마우리치오 사리.

선수로서, 사리는 수비수였고, 지역 아마추어 팀에 속해 있었다. 그는 토리노와 피오렌티나 테스트 무대에 참가했지만, 둘 다 실패했다. 그리고 곧 부상 문제로 인해 은퇴했다. 선수로서 부침을 겪었기 때문에, 그는 금융학 공부에 매달렸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monte dei paschi di siena' 의 은행원이 되었다. 그는 회계업무를 맡았고, 잘해냈으며, 런던에서 룩셈부르크까지 유럽 전반으로 출장을 다녔다. 은행원은 사리에게 잘맞는 직업이었지만,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했고, 축구계에 남고싶다는 충동이 강렬했다. 그래서 그는 코치를 시작했다. 수많은 아마추어 클럽을 인계받았고, 감독으로서 발전을 위해 그의 모든 자유시간을 투자했다. 그는 1990년대 'stia','faellese','cavriglia','antella'에서 일했다. 굉장히 고된 일이었지만, 사리는 세계최고 레벨 감독으로서의 꿈을 포기하길 원하지 않았다. 은행원은 상당히 더 돈벌이가 되었지만, 사리는 감독 생활을 통해 얻는 더 큰 보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슈트 대신에 트레이닝복을 입는 것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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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볼의 시작

 

2001년, 사리가 세리에D 'sansovino'를 맡고있는 동안, 사리는 오로지 축구에만 집중하기 위해 마침내 은행원을 그만두었다. 이것에 대해 그는 "무보수라도 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직업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크나큰 결정을 했지만,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었다. 그러나 그는 단념하지 않았고, 그의 최종 목표를 향해 끈기있게 계속해서 일했다. "강인한 삶은 아침 6시에 공장에 가는 것이다" 라고 그가 말했지만, 아마도 그의 아버지의 생각일 것이다. 작은 클럽인 'sansovino'에서 사리의 몇몇 별스러운 기질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어느날, 게임 전에, 그의 BMW가 스타디움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사리는 우연히 그의 선수 중 한명과 사고가 났다. 'sansovino'는 그 시합을 이겼고, 다가오는 주말, 사리는 고의적으로 같은 차로 사고를 냈다. 그리고 다시한번 'sansovino'는 이겼다. 

 

그는 추정컨데 최소한 33개의 세트피스 루틴을 준비한다고 해서, 'mr 33' 으로 알려져있다. " 결국에 우리는 그것들 중 4개나 5개를 사용합니다." 그가 나중에 말했다. 그의 편집광적인 스토리의 요점과 강박적인 관심은 그를 결과적으로 리그에서 떠오르는 감독으로 이끌었다. 만약에 그가 'sansovino'에서 우승하지 못하다면, 사리는 영원히 감독을 그만두려는 조짐이 있었다. 그러나 운이좋게도, 그가 해냈다.

 

그곳으로부터 그는 2003년에 3부리그 팀 'sangiovannese' 로 옮겼다. 거기서 그는 첫번째 시즌만에 승격을 이뤄냈다. 그리고나서 2005년, 그러니까 'Arezzo'에서 1년 이 후에, 그는 스스로에게도 기특한 출세를 이뤄내며 해고된 콘테를 대신하기위해 세리에B 페스카라를 맡았다. 그는 Arezzo의 강등을 막을 수 없었지만, 감독으로의 재능 이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컵대회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2:2 무승부를, 코파 이탈리아의 8강전 밀란을 상대로는 1:2로 패했지만, 막상막하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마라도나를 추모하는 나폴리의 홈구장.

비록 다음의 몇년동안 2부와 3부리그를 전전했지만, 사리의 상승궤도는 계속되는 것 같았다. 그는 'avellino','perugia' ,'alessandria'에서 짧게 마법을 부렸다. 2012년, 사리의 팀에게 필요한 강등 탈출을 이끌어내기에는 적은 승점인 것 같았고, 그는 'sorrento'에서 해고되었다. 그리고 세리에B의 팀 엠폴리를 맡았다. 그는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킨 강렬한 압박과 스릴넘치는 스타일의 축구로 플레이하면서 클럽을 승격시켰다. 마침내, 그는 53세가 되었고, 이탈리아 최상위리그에 도달했다. 세리에A에서 엠폴리는 인상적이었다. 사리의 명성은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폴리의 대표 'aurelio ed laurentils'는 사리볼의 숭배자 중 한 명이었고, 그래서 그는 2015년에 그를 임명했다. 거기에서 그는 성공의 성공을 거듭했다. 마침내 그의 놀라운 상승은 완성되었다.

 

지난 여름에 사리는 이번에는 첼시에서 다시 한번 콘테를 대신하게 되었다. 정말 놀랄만한 승진이다.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를 이끌면서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성공을 거두는 동안, 사리는 이탈리아 최상위리그에 미처 도달하지 못했었고, 전세계적으로 여전히 매우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었다. 현재 그 둘은 동등하며, 프리미어리그에서 각각 다른 팀을 이끌고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이다.   

 


 

글 티포(tifo)풋볼

사진 iana, michel merton, vakdarno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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