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ctics

토탈풋볼이란 무엇인가?

hyucks 2020. 2. 11. 21:19
반응형

토탈풋볼처럼 현대 축구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스타일은 1970년대 아약스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와 가장 연관되어 있고, 사실상 1974년 네덜란드 월드컵 팀에 의해 '토탈풋볼'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에 앞서 1930년대 'matthias sindelar의 오스트리아 국가대표팀과 1950년대 푸스카스의 헝가리가 그 스타일을 먼저 시도했었다. 그리고 두 명의 잉글랜드 코치에 의해 아약스 철학의 계통의 기원이되었다. 1915년과 1947년 사이에 3번의 마법과 함께 클럽을 코칭했던 잭 레이놀드, 1959년과 1965년 사이 두 번 아약스를 맡았던 빅 버킹엄이 그들이다. 그리고나서, 환상의 짝이 등장했다. 레이놀드밑에서 뛰었으며, 버킹엄을 대신해 덕아웃에 앉아있었던, 실질적으로 토탈풋볼을 창조해낸 리누스 미헬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유럽 축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일 것인 요한 크루이프가 그들이다. 그리고나서 스테판 코바치에 의해 계승되었고, 그의 지도하에 아약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팀이 되었다. 

 

토탈풋볼 철학을 가장 완벽히 이해했던 요한 크루이프

아마도 토탈풋볼은 두가지 핵심 컨셉을 가진것 같다. 공간의 활용과 포지션의 유동성이 그것이다. 둘다 볼을 달고 기술을 펼칠 수 있는 것과 함께, 체력을 상당히 중요시하면서, 미헬스의 열광적인 작업량과 훈련이 토대가 되었다. 공간이 핵심이다. 공격할 때는 피치를 넓게 사용하고, 수비할 때는 좁게 사용한다. 이러한 전술을 수행하기 위해, 아약스는 또한 압박했다. 당시에, 그들은 거의 미친듯이 압박했다. 패싱 라인을 압박하는 것은 덜 강조되었으며, 종종 정말 끈질긴 요한 네이컨스의 리드하에 포제션하에 상대팀 선수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이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아약스는 또한 공간을 더 압축하면서, 매우 높은 수비라인을 형성했다. 

 

토탈풋볼의 압박은 어떤 체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고, 공을 중심으로 미친듯한 전방압박이 존재했다.

4-3-3은 토탈풋볼과 가장 연관되어 있는 포메이션이며, 대니 블린트, 호르스트 블랜켄버그, 헐쉬오프와 같은 선수들이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계속해서 맡아왔던 리베로가 미드필드로 전진하면 3-4-3이 되었다. 그리고 아약스에서는 대개 세르비아 출신의 'velibor vasovic'가 맡았다. 이런 움직임은 공격 전환시 시발점에 되었을 뿐 아니라, 상대편 공격수를 마크하는 여분의 선수와 4명의 미드필더를 보장했다. 

 

조나단 윌슨의 기록에 따르면, 다른 팀들이 수평적인 포지션 이동이 있었던 반면, 윙어가 안 쪽 아래로 내려온다던가, 혹은 부드럽게 종적으로 움직임을 그러니까 히데구티이 같이  펄스나인처럼 내려와 플레이하거나, 공격형 미드필더와 위치를 바꾸거나, 아약스와 네덜란드 대표팀은 전방위적으로 포지션이 스위칭되는데 최고였다. 이렇게 해서, 4-3-3 혹은 3-4-3은 측면을 오르내리는 선수들을 볼 수 있었고, 공격 패턴을 만들기 위해, 유동적으로 서로 번갈아 움직였다.

반응형

포지션 체인지, 누군가 공격에 가담하면, 그 자리를 누군가 메꾸면서 팀은 유동적으로 움직였다.

1970년대 초 가장 성공적인 시기 팀의 척추는 'blankenburg' , 'neeskens' , 'cryuf' , 'heinz stuz' 로 구성되었고, 오른쪽 측면선수들로 'wim suurbier' , 나중에 완벽한 스위퍼가 되었던 'arie haan' 그리고  'johnny rep' , 왼쪽 측면 선수들로, 'ruud krol' , ' gerrie muhren' , 'piet keizer' 이었다. 이들 모두 척추라인의 선수들이 홀딩과 커버를 할것이라는 인식하에 서로 위치를 바꾸었다. 그러나 크루이프는 또한 마음대로 내려와 플레이하거나 측면으로 이동했다. 압박은 선수들이 공격과 마찬가지로 전진해서 수비를 할 수 있다면, 팀의 유동성이 팀의 형태를 손상시키지 않을수 있음을 의미했다. 물론 공격적인 맨 마킹과 미드필드에서의 수적우위에 의해, 1974년 서독과 포그츠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공격시스템이 무력화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약스가 상승세에 있을 때, 그들을 멈추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토탈풋볼의 영향은 비엘사식 축구와 바르셀로나에서 미헬스와 크루이프즘을 통해서, 펩 과르디올라의 포지셔닝 플레이에서 드러난다. 종적인 수적우위에 의존하는 과르디올라의 포지셔닝 플레이는, 만약에 선수들이 위치교환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했다. 그리고 비엘사와 과르디올라 둘 다 그의 팀들이 공간을 컨트롤하고, 서로 위치를 교환하며, 압박할 것을 독려했고, 선수들에게 해본적 없는 역할을 플레이해보기를 독려했다. 예를들면, 미드필더에게 공격적인 마인드를 갖춘 수비수가 될 것을 허용했다. 토탈풋볼의 유산은 단지 1970년대 네덜란드와 아약스의 아름다움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 최고의 축구 곳곳에 살아남았다. 

 


 

글 티포(tifo)풋볼

사진 sara bakar

 

반응형

'tact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비 전술:버스 세우기 (feat 무리뉴)  (0) 2020.07.19
인버티드 풀백이란 무엇인가?  (0) 2020.04.19
스위퍼키퍼란 무엇인가?  (0) 2019.11.29
새롭게 주목받는 투톱 전술?  (0) 2019.11.28
지역방어와 맨마킹  (0) 2019.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