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2. 22:09ㆍplayer
호나우두는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명이다. 호날두 말고, 브라질 출신의 호나우두. 오 페노메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 어떠한 선수도 호나우두의 파격적인 모습을 대체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까닭인지, 그는 축구사 가장 위대한 그룹에 특별히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 그룹에는 마라도나, 메시, 호날두, 펠레가 있다. 왜 그럴까? 그가 얼마나 좋은 선수였는지 왜 이해하기 힘든 걸까?
# 페노메노 호나우두
호나우두의 커리어 시기
명백한 지점은 활동한 시기이다. 호나우두의 커리어는 위대한 그룹의 어떤 다른 선수들과도 함께 하지 않았다. 펠레와 마라도나는 그보다 이른 시기에 활동했고, 메시와 호날두는 호나우두의 전성기가 지나버린 나중에 등장했다. 나란히 비교하는게 불가능하며, 그의 능력은 전후맥락 상 제대로 관련지을 수 없다.
유니크함
또다른 문제는 (그에 대한 평가가)좀 더 추상적이라는 것이며, 얼마나 그가 특이한지로부터 발생된다. 그의 매력 대부분은 그의 독특함에서 비롯되었고, 그가 하는 피치위 모든 것은 새로웠다. 그의 평판이 유럽에서 자라나기 시작했을 때, 첫번째로 아인트호벤, 그 이후 바르셀로나.
그 사이,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역대 축구 선수들에게 결코 볼 수 없는 요소로 구성되었다. 호나우두는 신체적으로 위력적임과 동시에(매우 넓은 어깨를 갖추면서), 매우 빨랐고, 민첩했으며, 어떤면에서 그의 체형을 무시하는 듯한 엄청난 스킬을 보유했다. 그는 능숙한 골스코어러였을 뿐만 아니라, 스펙타클했다. 유니콘이란 용어가 존재하기 오래 전부터 존재한 것처럼.
대표적인 사례는 1995년 호나우두의 원더골에 대한 바르셀로나 감독 바비 롭슨의 그 유명한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분명히, 그건 생전 처음 본다는 반응이었으며, 그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현대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측정할 수 있을까?
임팩트
호나우두는 더 크게 상업화가 되고, 좀 더 진보된 훈련 기술과 우수한 준비 속에 경기가 진화되기 전, 그 특별한 시기로 결코 돌려놓을 수는 없다. 대신에 그의 임팩트는 좀 더 신화적이다. 그의 커리어는 분석 붐이 있기 전에 잘 끝났다. 그의 기여도는 최근 기본 통계보다 더 상세한 무언가로 묘사될 수 없다. 그들이 꽤 설득력 있는 증언을 제공한다 할 지라도, 그의 라이브를 지켜본 이들로부터 목격자들의 진술에 의존해서 그가 남겨져있다.
호나우지뉴는 어린 시절 영웅으로서 그를 묘사했다. 리오넬 메시는 "그는 내가 본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매우 빨랐고, 어떤
식으로든 득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보다 훨씬 슛을 잘했다"고 말했다. 티에리 앙리는 "호나우두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 라고 말했다. 시도르프는 "그는 내 커리어를 통틀어 최고의 선수" 라고 회상했다.
호나우두에 대해 언급한 가장 적합한 지점은 즐라탄에 의해서 였다. "어떠한 누구도 그처럼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호나우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선수는 없다." 호나우두의 유산의 영향은 중요하다. 그는 그 세대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다. 깊은 지역으로 내려와 플레이하거나, 박스 바깥에서 높은 수준의 공헌을 할 수 있는 몇몇 중 한 명이자, 최고 수준의 골스코어러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시대에서, 그의 골 수는 앨런 시어러, 클루이베르트,바티스투타같은 선수들과 비교되었고, 생산성 면에서는 스토이치코프, 호마리우와 비교됐다. 그러나 분명하게, 그는 어떤 선수들보다 더 큰 차원을 가졌다. 또한 호나우두는 수많은 모방자를 낳았다. 수백 명의 미래의 선수들은 그의 특성을 흉내냈다. 그의 성공은 자신의 포지션 한계를 변경한 것이며, 오로지 박스 내에 속해 있던 혹은 골문으로부터 40or50 야드 떨어진 곳에서 수비수들을 제칠 필요가 없었던 공격수라는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그는 이런 유형의 첫번째 선수는 아니었지만, 논쟁의 여지없이, 연속적으로 일시에 그러한 능력을 드러낸 첫번째 선수였다. 결정적으로, 그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각기 다른 리그가 전세계적으로 멀리 꾸준하게 중계되기 시작한 때 였고, 그러면서 그의 영향력이 더 널리 퍼질 수 있었다.
불운과 영광
타이밍은 호나우두에게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불운도 마찬가지였다. 호나우두는 18세 때, PSV로 이적했다. 이적 후 4시즌 동안, 인테르와 바르셀로나를 망라해서, 그가 가는 곳마다 결실을 맺었다. 리그를 상관않고, 수비 수준을 개의치않고, 그는 많은 골을 넣었다. 그러나 1999년 , 그는 연속해서 두번의 심각한 무뤂부상을 겪었다. 그러면서 그의 커리어 중 20대 중반 전성기의 두 해를 통째로 날렸다. 어린 나이에 부상을 겪었던 어느 위대한 선수들과 같이, 호나우두가 그 기간동안 높은 수준을 성취한 것은 의미가 있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그는 1996년,97년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8년 발롱도르를 수상했고,1998년 월드컵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고트(goat)를 향한 여정은 부상에 의해 좌절되었다. 팬들의 상상은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경향이 있으며, 선수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곁들인다. 호나우두는 2002 월드컵 브라질 우승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그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다시 한번, 그는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그는 선수 생명이 끝날지 모르는 부상의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의 커리어는 매우 매력적이었고, 그가 부재했던 시기 우승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이상 가치가 있었다.
호나우두는 얼마나 잘한 걸까?
그러나 이것은 같은 문제이다. 특히 메시와 호날두 시대 이 후, 그들은 완전히 그들의 성공을 증명했다. 골기록, 한 다스가 넘는 트로피, 전례가 없는 개인 수상의 연속, 호날두의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측정 항목을 사용할 수 있을까? 그의 발롱도르 가치는 고분분투속에서 딱히 별표가 붙지 않고, 다르게 새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뤄낸 모든 것들을 그의 전부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 결론
그러나 그 중에서도,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스포츠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과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호나우두가 얼마나 좋은지는 매우 규정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어떤 선수가 위대한지는 주관적 해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트로피, 임팩트, 지속성 혹은 스펙타클함? 퍼포먼스 대비 임팩트? 이 질문들은 항상 제대로된 답을 찾기 힘들 것들이다.
원글:티포풋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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