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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레스 베일의 유산 7인

hyucks 2021. 9. 2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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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입단 당시 가레스 베일

2013년 7월, 가레스 베일은 레알 마드리드로 팔려갔다. 베일은 토트넘에서 21골을 넣고, 올해의 잉글랜드 선수 협회 상을 수상하며 주목할만한 시즌을 보냈다. 그 후 지지부진한 협상 끝에, 스퍼스와 레알은 마침내 당시 세계 최고 이적료인 85.1m에 동의했다. 베일은 챔스에서 4번이나 우승하며, 스페인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는 동안, 그해 여름 토트넘은 벌어들인 돈으로 서둘러 리빌딩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 후 영입된 7명의 선수에 대한 것이다. 당시의 자랑은 토트넘은 "엘비스를 팔고, 비틀즈를 데려왔다" 는 것이었다. 뭐 그렇치는 않았지만, 

 


# 가레스 베일 이적 후 영입된 7명의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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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멜라

7명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멤버가 떠났다. 7월 말 즈음, 라멜라는 브라이언 힐과의 스왑딜로서 세비야로 이적했다. 다소 과장된 금액 30m으로 로마에서 영입된 그는 (토트넘에) 도착한 날부터 매우 양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베일과 몇가지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와의 직접적인 비교로 고통을 받았다. 라멜라는 포체티노 하에서 훌륭한 발전을 이뤄낸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다소 괴팍한 기질과 개성과 함께, 그의 활동량은 그를 경이롭게 보이게 했으며, 현대 축구가 가장 주목할 만한 두가지를 가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과 서포터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정도의 선수로 한계를 넘지못했다.  

 

에릭센

라멜라와 달리, 에릭센은 분명히 팬들이 좋아하던 선수였다. 오래전부터 주목받던 유망주로서, 2013년 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미적지근 했다. 아약스와 계약한 마지막 해였다. 그를 영입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단지 11.5m 이었다. 그가 부상을 당하고, 보야스와 헤드 코치로서 짧게 일한 셔우드의 해고되었던, 첫시즌을 떼어놓더라도, 이 후 그는 포체티노의 팀에서 핵심 구성원 중 한 명이 되었다. 6년을 넘게 클럽과 함께 한 후, 인터밀란으로 20m에 팔렸다.

 

파울리뉴

파울리뉴는 성공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적 초기에, 그는 실제로 많은 서포터들을 가장 흥분케한 선수였다. 17.75m 이적료로 클럽에 합류했을 때, 그는 25살에 불과했다. 그리고 바로 전년도, 코리치안스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인상적인 퍼포먼스가 결부되서, 남미의 램파드라는 다소 부풀려진 별명 속에, 토트넘 팬들은 그를 싸게 데려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실상 그는 풀리지않는 수수께끼를 남겼다. 결국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실패한 채 클럽을 떠났다. 그러면서 바르셀로나로 기묘하게 돌아오기 전에, 중국 슈퍼리그로 향했었다. 

 

솔다도

북런던에서 솔다도의 시간은 끔찍했다. 항상 기복이 있던 선수였음에도, 솔다도는 유럽내 수준급 골스코어러 중 한 명으로 라리가에서 평판이 날로 좋아졌었다. 그는 그가 이적한 오사수나, 헤타페, 그리고 가장 유명한 발렌시아까지 어느 곳에서든 득점했다. 그럼 토트넘에서는?? 전혀, 그는 1:0으로 승리한 크리스탈 팰리스 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데뷔전에서 득점했지만, 해리케인이 그의 자리를 빼앗기 전까지, 단지 16골만을 넣었다. 그리고나서 2015년 비야레알로 떠났다. 1년 후, 그는 '토트넘에서의 실패의 잔상이 남아있다' 라고 표명했다. 그는 27m 이적료에 부합하는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분투했으며, 악마에 시달리는 선수처럼 보였다. 골 직전에 그가 놓친 몇몇 장면은 요즘에도 보기가 끔직하다. 

 

샤들리

손흥민, 케인이 등장하기 전, 나름 쏠쏠한 플레이를 펼친 샤들리

골문 앞 샤들리는 실제로 매우 좋았다. 그는 트벤테로부터 별다른 화제없이 비교적 적은 7m의 이적료로 이적했다. 그러나 포체티노 감독의 초창기, 그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는 선수로서 증명했다. 그러면서 케인과 손흥민 제대로 자리 잡기 전에, 왼쪽과 오른쪽에서 플레이했다. 샤들리는 토트넘에게 거의 2배의 수익을 안겼다. 2016년, 그는 13.5m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웨스트 브로미치로 팔렸다. 거기서 활약하는 동안 그는 잊혀졌지만,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한 2016년 10월 토트넘과의 경기 포함되었다. 샤들리는 저니맨 생활을 보냈다. 웨스트 브로미치의 강등 이후 그는 팀을 떠났고, 모나코와 안더레흐트에서 1시즌을 보내고, 현재 터키 리그의 베식타스에서 플레이하고 있다. 

 

카푸에

카푸에 또한 성공적이었다. 그는 2021년 유로파 리그를 우승한 비야레알의 일원이었다. 그가 10m의 이적료로 토트넘에 합류했을 때, 매우 영리한 이적처럼 보였다. 툴루즈에서, 카푸에는 스스로 프랑스에서 가장 영리하고 어린 볼 탈취자로서 이름을 알렸으며, (토트넘에서) 스콧 파커의 투지가 없을 때의 미드필드에 재치를 더해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전망이었다. 부상은 그를 첫시즌 대부분 출전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2년 후 그의 평판을 회복한 왓포드로 팔려가기 전에, 포체티노 하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키리케슈

아마도 이들 중 가장 적은 영향을 끼친 키리케슈였지만, 그의 이적은 확실히 가장 드라마틱했다. 키리케슈는 우아하며, 볼 플레잉 수비수였다. 그리고 토트넘은 7월 말, 부쿠레슈티와의 영입 협상을 관철시키는데, 다수의 클럽을 물리쳤다. 그러나 그들은 감옥에서 전화로 협상에 개입한 수감된 부쿠레슈티의 오너를 고려하지 않았다. 베칼리(부쿠레슈트의 오너)는 키리케슈를 스테우아가 챔스 플레이오프를 통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때까지 파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영리한 결정이었다. 슈테우아는 그룹 스테이지로 진출했고, 8월 마지막 날, 이적시장이 닺힐 때, 키리케슈는 8.5m에 계약하면서 가레스베일 7인의 마지막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이토록 야단법석할 가치는 없었다. 풀햄을 상대로 먼거리에서 득점한것과 끔찍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키리케슈는 토트넘의 유니폼을 입고 프리미어리그에서 30경기 조차 뛰지 못했다. 그는 2015년에 나폴리로 팔려갔고, 현재 여전히 세리에A의 사수올로에서 뛰고있다. 

 


글 티포(tifo)풋볼 

사진 rmtv,club brug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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