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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살라 성장기

hyucks 2022. 6.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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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건 모하메드 살라는 조지 웨아 이후 발롱도르에 가장 근접한 선수이다.

모하메드 살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정받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이집트의 아이콘인, 살라는 현재 폼 기준으로 세계 최고 선수일 거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그는 틀림없이 1995년 조지 웨이 이래로, 그 해 발롱도르를 수상한 조지 웨아와는 다를지라도, 그러한 (최고 선수)라고 주장할 수 있는 최초의 아프리카 선수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라는 가장 큰 개인 상을 수상하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살라는 (피파 올해의 선수) 두 번이나 3위를 기록했고, 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골든부츠를 두 번 수상했고, 우리는 그가 2017-18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와 팬이 뽑은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 리버풀의 아이콘, 모하메드 살라

 

라이징스타

살라는 이집트의 북부 도시 'basyoun' 에서 태어났다. 어릴때 부터, 그는 축구에 깊게 열성적이었다. 리버풀의 공식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이 언급돼있다. "원래 저는 'basyoun' 에있는 나의 마을로부터 30분 떨어진 클럽에서 플레이했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1시간 30분 떨어진 'Tanta'의 클럽과 계약했죠. 거기서부터, 카이로의 아랍 컨트렉터스로 이적했고, 그렇게해서 훈련을 가지기 위해 한 주에 5일 4시간 30분의 여정을 4년간 보냈죠." Al Mokawloon al arab sporting club라고 알려진, 아랍 컨트렉터스와의 계약은 그의 첫번째 프로 계약이었지만, 불과 14살 때 일이었고, 그는 수업 대부분을 빠져야 했기 때문에, 학교로부터 특별한 허가가 있어야만 했다. 그는 17살에 이집트 1부리그에 데뷔했고, 2011/12 시즌 매경기 뛰었다. 포트 사이드 경기장(port said stadium) 폭동으로 남은 시즌이 취소된 후, 유럽 클럽들은 거대한 야망(살라 영입에 대한)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다듬어지지않은 어린 재능일 뿐이었다.

 

포트 사이드 경기장 폭동 이후, 본격적으로 유럽 진출에 다가갔다.

근래들어 스위스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인 바젤은 살라가 2골을 득점한 이집트 23세 이하 대표팀과 계획한 친선 경기에서 단 한번의 스카우팅으로 낚아챘다. (거기서)그는 연달아 2년동안 리그를 우승했지만, 그의 퍼포먼스는 챔피언스리그, 특히 2013/14 챔스 조별리그 첼시를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득점을 하며 보여주었다. 바젤은 조세 무리뉴의 저 21세 선수와 사랑에 빠졌다는 발언과 함께, 첼시를 홈과 원정에서 무너뜨렸다. "저는 살라가 왼쪽과 오른쪽에서, 혹은 스트라이커 뒤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진 것이 마음에 듭니다. 그는 공간에 빠르게 침투하고, 볼을 달고 빠른 전진이 가능하죠. 창의적이고, 열정적이고, 무엇보다 왼발잡이 입니다."

 

무리뉴가 로벤과 같은 유사한 마법사 유형을 보유했었기 때문에, 마지막 포인트가 중요하다. 그리고 무리뉴는 그 기간동안 첼시의 새로운 세대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클럽은 마타와 케빈 더 브라위너를 팔았음에도, 스쿼드를 새롭게 구성하려했고, 좀 더 볼 지배력이 우수한 팀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몇몇 젋은 선수를 데려오려했다. 그러나 벵거 감독의 1000번째 경기였던 아스날 전과 스토크 전에서 2골을 넣고,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 분투했음에도, 게다가 2014년 이집트 군복역을 피하기 위한 로비가 있었음에도, 살라는 첼시에서 정착하는데 실패했다. 훈련장에서 엄청난 인상을 주었음에도, cobham(첼시의 트레이닝 센터)에서의 그의 자신감을 복제하려고 분투했음에도, 그의 부끄러움 많은 성격은 (기질이) 강하고, 개성넘치는 드레싱룸에 의해 압도당했다. 살라는 (누군가를) 지목하고, 충분히 들릴만큼 큰 소리를 낼 수 없었고, 그래서 어쩌면 그러한 결과는 예상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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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식으로 이적한 과드라도와 함께, 그는 첫번째로 피오렌티나로 임대되었다. 그러나 시장에 비싼 값에 팔기 위한 임대로 활용하기보다, 여전히 다시 그를 팀에 복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그의 성장을 주시했다 라는 느낌은 있었다. 그는 전술적인 기민한 환경속에서 잘 발전하면서, 세리에A에서 26경기 9골을 넣었다. 피오렌티나가 동의된 임대 기간동안 그를 보유하는 것을 원했음에도, 그리고 피오렌티나가 제기한 소송에도 불구하고, 살라는 실제로 시즌 말미 어디로 가야할 지 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2015/16 시즌 로마로 떠났다. 임대는 신속하게 영구적으로 진행됐고, 살라는 83경기 34골을 넣으며, 다시 이탈리아에서 잘 성장했으며, 마지막 시즌에는 세리에A 올해의 선수 2위에 올랐다.

 

리버풀의 아이콘이 되버린 모하메드 살라.

리버풀

이탈리아에서 인상적인 활약때문에, 살라는 에드워즈가 회장으로 있는 리버풀의 유명한 영입 기관에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 앤디 캐롤의 35m 이적료를 무색케하는, 36.5m으로 클럽 역사상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다. 상대적인 면, 절대적인 면 둘 다 고려하더라도, 그 영입은 현재 훔쳐온거나 다름없다. 살라는 아마도 리그내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정할 수 있는 삼각편대를 이루는 피르미누와 마네 사이에서, 리버풀에서 출전한 모든 경기, 229경기 동안 148골을 넣었다.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클럽월드컵 우승은 살라가 찬사를 받는데 충분한 이유되었지만, 지칠 줄 모르는 활동량, 친절하고, 오픈된 성격, 그리고 번뜩이는 재치는 그를 클럽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현재 아디다스, 펩시, 보다폰의 얼굴로서, 살라의 상업성은 그의 스포츠계에서의 성공만큼이나 호감도의 결과이다. 살라의 여정은 주목 할만 했다. 이집트에서 녹초가 되도록 훈련을 위해 5시간의 여정을 버텼고, 어린 나이에 유럽으로 이적하고 언어장벽과 수줍음 많은 성격과 그의 첫번째 큰 이적 실패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이집트 스타는 굉장한 개성과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선천적인 재능이 명백히 도움이되었지만, 착실히 해나갔던 그의 능력과 단호한 결의로 그의 경력을 형성한 것 또한 핵심이다.  

 

그의 마술과 같은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2022년 아프리카 네이션컵 그에게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네갈은 승부차기 끝에 이집트를 물리쳤다. 그의 커리어 두번째 준우승이었고, 여전히 국제 우승 메달 없다. 그러나 그는 그의 능력으로 이미 위대하게 축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또다른 아프리카인 발롱도르 수상자를 기다리는 반의 반세기의 결말의 시간이 남아있다.  

 


 

글 티포(tifo)풋볼

사진 inge knoff, cchana, aschevo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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