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4. 23:30ㆍteam(epl)
2013년, 무언가 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위건이 FA컵에서 우승한 것이다. 같은 시즌, 특별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위건이 강등당한 것이다. 이것은 기대에 어긋난 한 클럽과 괴로우면서 즐거운 시즌의 이야기이다.
# 위건은 어떻게 FA컵을 우승했나?
데이브 웰런
위건은 챔피언쉽에서 2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프리미어리그에 2005년에 승격했다. 그리고 그들 역사 최초로 잉글랜드 축구 최정상자리에 올랐다. 약속이 지켜졌다. 10년 전, 1995년, 위건은 리그2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지위는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10년 내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팀은 데이브 웰런에 의해 인수되었다. 웰런은 전직 프로축구 선수였다. 그는 블랙번과 크루에서 뛰었고, 1960년대 FA컵 결승에서 다리가 뿌러지는 고통을 겪었다. 90년대 중반즈음에, 그는 지역에서 가장 큰 스포츠웨어 브랜드 중 하나인 jjb의 회장이 되었고, 폴 주웰 감독하의 위건이 디비전 위로 올라갈 때까지 후원했다.
05/06 시즌
2005년 5월에 레딩을 3-1로 이긴 후, 그들은 엄청난 성공과 마주했다. 주웰은 이미 믿을수 없는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었다. 그는 1999년 최상위 리그로 기적과같은 승격을 이뤄낸 브랜드포드를 맡았었다. 훨씬 인상적이었던것은, 그 팀을 최상위리그에서 한 시즌 이상 머무는데 성공했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위건의 2005/06 캠페인은 기적적이었다. 예상 밖의 팀이었고, 어린 레인턴 베인스, 컬트적인 지미 블라드, 정력적인 공격수인 헨리 카마라, 리 맥컬록과 카랑뵈같은 1부리그 베테랑 출신 을 포함한 뜻밖의 선수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매우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9경기중 8승을 한 8월과 10월 사이, 6연승을 포함해서, 홈과 원정에서 맨시티와 아스톤빌라를 이기고, 홈구장에서 웨스트햄과 에버튼을 상대로, 어떤 식으로든 믿을만한 결과를 성취하며, 그 해 10위로 마쳤다.
그러나 다시 결코 그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다음 6년 동안, 위건은 강등권에서 대담하게(?) 싸웠다. 그들의 생존 경쟁은 정말로 연례 행사가 되었다. 주웰은 2007년까지 클럽에 남았다. 크리스 허칭스와 스티브 브루수가 해임 된 후, 2009년에 스완지의 감독 로베르토 마르티네즈가 임명되었다.
마르티네즈
선수로서, 마르티네즈는 흥미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선수로서, 그는 2부리그 하위권에서 스완지의 초기 반등의 일원이었고, 코치로서 그는 실용주의와 4-4-2가 기본인 곳에서, 점유율 축구, 3백과 인내심있는 빌드업의 신봉자가 되며, 뭔가 조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스완지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어떻게 해야되는지에 대한 양식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위건에서 어떠한 철학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1. 영입수완
클럽의 영입은 수년에 걸친 그들이 멀고 넓게 그들의 (영입)그물망을 던진 것이 반영되었다. 조르디 고메즈는 2009년에 에스파뇰으로부터 영입되었고, 1년 후, 파라과이 출신 알카라즈는 브루가스로부터 합류했다. 그리고 아루나 코네는 2012년 라요 바예카노로부터 영입되었다. 3명 모두 FA컵 결승에서 뛰었고, 수년에 걸쳐 영악한 계약으로 영입된 선수들이었다. 맥카시와 맥아더는 스코틀랜드로부터 남쪽으로 이적했고, 션 말로니도 그랬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미드필더 벤 왓슨은 영국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이적했다. 그게 성공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주위로, 수많은 방출도 있었다. 2009년과 2013년 사이, 위건은 유동적이었고, 스쿼드 또한 유동적이었다. 이 4년 동안, 임대를 포함하지 않고, 39명의 선수가 합류했고, 61명의 선수가 방출되었다. 그들의 전략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묘한 종류의 성공으로 입증되었다. 위건에서의 시간동안 마르티네즈는 아스톤빌라와 리버풀의 접근으로 충분히 인정받았다. 그는 전자(아스톤빌라)를 거절했고, 후자(리버풀)는 그를 대신해 로저스를 임명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은 그의 능력에 대한 척도였다. 그리고 위건은 가치있는 선수들을 배출 중이었다. 수년에 걸쳐, 베인스는 에버튼에 팔렸고, 팔라시오스는 토트넘, 안토니오 발렌시아는 맨유로 팔렸다. 은조그비아 또한 아스톤빌라에 합류했고, 모제스는 첼시로 이적했다. 뛰어난 선수들은 떠났고, 새로운 선수들은 종종 빈틈없이 그자리를 채웠다. 위건과 마르티네즈가 살아남는데는 충분했다.
2. 롤러코스터
그렇지만 2012/13시즌 즈음에, 그 루틴은 좀 더 미약해졌다. 사실상, 리그 캠페인은 재앙이었다. 마르티네즈의 팀은 한 해가 가기 전, 승리는 5번에 불과했다. 그리고 12월부터 줄곧, 한 번을 제외하고 강등권을 헤맸다. 5월 웨스트 브롬위치를 향한 용감한 재기 의지는 그들에게 희망을 남겼지만, 스완지를 상대로 홈에서의 처참한 패배는 그들이 강등권에서 살아남기위해 아스날을 승리를 거둬야 함을 의미했다.
정말 그들에게 동기가 없는 시즌이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위건은 FA컵에서 순조롭게 순항 중이었다. 3,4라운드에서 본머스와 메이클즈필드를 이겼다. 5라운드와 6라운드에서는, 허더스필드와 에버튼을 각각 홈과 어웨이에서 완파했다. 말로니의 골과 유스 아카데미 출신 윙어 맥나나만이 웸블리에서 밀월을 상대로 다이나믹한 골을 넣으면서, 마침내 결승에서 맨시티와 맞딱뜨리게 되었다.
3. FA컵 결승
그들에게 많은 희망이 주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웸블리에서, 그들은 아게로, 테베즈, 야야투레, 그리고 콤파니를 포함한 팀과 마주했다. 만일 위건이 부끄럽지 않은 스코어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그대로 가치있는 위로가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을 해냈다. 마르티네즈와 그의 선수들은 맨시티 전을 위한 게임플랜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선발멤버 7명 안에는 9명의 각기 다른 국가 출신의 능력들이 버무러져 있었지만, 끈끈함이 있었다.
볼이 없을 때, 그들은 깊게 내려섰고, 완벽하게 수비했다. 그들이 볼소유를 다시 회복했을 때, 전방으로 튀어나가려 했다. 맥나나만과 코네의 속도를 활용했고, 가끔씩 말로니가 지원을 나갈 수 있다면, 세 명이 공격에 가담했다. 그리고 그것이 통했다. 그들은 압박을 견뎌냈고, 골키퍼 조엘 로비스는 전반전 테베즈와 나스리의 슛을 훌륭하게 막아냈다. 위건은 자신들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좋은 찬스를 만드는데 충분한 점유율을 기록했다. 맥나나만은 골포스트를 살짝 지나는 슛을 했고, 또다른 슛은 근거리에서 막혔다.
후반전 맥나나만은 자발레타로부터 두 번의 나쁜 태클과 두 번의 옐로의 카드를 유도하면서, 게임을 좋게 바꾸었다. 6분을 남기고, 만치니의 팀은 10명으로 숫자가 적어졌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90분이 지나고 1분이 되었을 무렵, 그 이점이 발현되었다. 교체로 들어온 벤 왓슨은 말로니의 가까운 포스트로 향하는 코너킥을 맞이했고, 그의 헤더은 조하트를 지나 코너 구석으로 향했다. 웸블리의 반쪽은 함성으로 가득했고, 위건 선수들은 코너 깃발 주변에서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결론
위건이 FA컵을 우승한 것은 현대 축구 역사에서 가장 큰 충격 중 하나였다. 그리고나서 3일 후에, 그들은 동일 시즌에 강등되는 첫번째 우승팀이 되었다. 그들은 마지막에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강등되었다. 아스날 전 에메리츠에서 리드를 하고 있었고, 잠시동안 한 주 동안 두가지 기적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지만, 홈팀은 파워로 응답했고, 결국 4:1로 (위건을) 이겼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위건의 시간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돌아오지 못했다.
원글:티포풋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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