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탈리아 5

득점으로 해고가 된 선수(feat.안정환 골든골)

https://youtu.be/-tTnbXarlPU?feature=shared 2002년 월드컵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한국이 토너먼트에서 연장전 서든 데스 방식의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떨어뜨렸을 때 였다. 그리고 그 골은 거대한 논란을 야기했고, 신화를 창조했다. 그 골은 안정환이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한 117분 즈음에 나왔다. 그것으로 한국은 토너먼트를 통과했지만, 게임 내 발생한 연속된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을 지켜본 이탈리아(더티한 이탈리아겠지!)가 좀 더 부각되었다. 다음으로 발생한 것은 믿기 힘든것이었다. 골든 골의 주인공인 안정환은 페루자에서 뛰고 있었다. 클럽(페루자)의 회장 루치아노 가우치는 이탈리아를 망친 누군가에게 봉급을 지불할 마음이 없다고 선언하면서 탈락에 대해 격노했다. 안정환은 결코..

story 2024.03.23

레지스타(딥라잉 플레이메이커)란 무엇인가?

레지스타는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이다. 이탈리아 풋볼이론가들에 의해 명명된 2개의 창의적인 롤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트레콰르티스타로서, 스트라이커 뒷 공간에서 활동하고, 전술사적으로 레지스타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포지션이다.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는 축구전술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오래전 2-3-5 포메이션에서, 하프팩 3명 중 가운데는 앞 선에 배치된 윙어에게 멋진패스를 줄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 레지스타?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레지스타의 역사 1908년과 1911년, 맨유의 일원으로 리그우승을 차지했던 찰리 로버츠는 2-3-5의 센터하프자리로부터 공격위치까지 건네는 롱볼능력으로 유명했다. 이탈리아 감독이었던 비토리오 포조는 로버츠의 딥 포지션에서의 창의성을 동경했고, 몬티를 비슷한 방법으로 사용했다...

tactics 2023.04.26

안토니오 콘테의 (19/20)인터밀란 전술 (feat. 3-5-2)

'epl edit'은 저명한 필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TIFO(티포)풋볼의 컨텐츠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프리미어리그와 관련된 글이 주가 되겠지만, 축구 전반적인 이슈나 이야기도 다룹니다. 메인 페이지에서 더 많은 컨텐츠를 확인하세요. 블로그를 구독하셔도 되지만, 여의치 않으신 분들은 페이스북, 카카오 스토리,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서도 컨텐츠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인터밀란은 안토니오 콘테 하에서 탄탄하게 시즌을 출발했다. 유벤투스에서 스쿠데토를 3번 차지하고, 마찬가지로 첼시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 콘테는 두 팀에서 그를 우승청부사로 많은 기여를 한 3백을 도입했다. 7경기를 치른 후, 인터밀란은 아탈란타와 나폴리 다음 3번째로 가장 많은 골을 넣었고, 가장 적은 골을 허용했다. ..

team(other) 2022.03.19

왜 3백을 사용할까? (feat. 유로2020)

왜 팀들은 3백으로 플레이할까? 뭐,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명백한 것은 수비적인 상황에서 많은 이점을 지닌 형태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추정상 유로 2020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팀들 중 일부가 3백을 선택했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잉글랜드, 북 마케도니아, 헝가리는 조별리그 동안 3-5-2를 활용했던 대표적인 팀들이었다. # 왜 팀들은 유로대회에서 3백으로 플레이하는가? 기본 포맷 이 대중적인 포메이션은 두 명의 스트라이커가 종적인 패스를 막고, 3명의 미드필더가 피치 중앙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팀 빌드업을 측면으로 유도할 수 있다. 그리고 윙백은 상대 윙어를 상대로 2:1 수적 우위를 갖는다. 만약에 상대팀이 크로스를 통해 박스 안으로 볼을 넣을 수 있다면,..

tactics 2021.07.11

마우리치오 사리는 누구인가?

# 감독 데뷔 이전 마우리치오 사리는 1959년 나폴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대부분을 피렌체에서 보냈다. 그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아버지는 사리가 어렸을 때, 크레인 운전기사로 일하기 위해 이사했고, 가족들도 따라갔다. 사리는 필리네 발다르노 지역 공동체에서 자랐고, 아래층에 '바'가 있는 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거리에서 축구를 배웠다. 어느 소년들처럼, 그는 볼에 대한 재간이 타고나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는 축구의 전술적인 면, 분석적인 면에 더 매력을 느꼈다. 사리가 축구계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로컬 팀 'pedale figlinese'를 다니면서, 거의 사이클 선수가 될 뻔했다. 그의 아버지는 2년동안 프로 사이클 선수였다. 그러나 결국 사리는..

coach 2020.02.0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