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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햄튼의 중흥기는 다시 올 수 있을까?

hyucks 2022. 2. 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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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햄튼의 홈구장, 세인트 메리 스타디움.

2015/16 시즌 마지막날, 사우스햄튼은 크리스탈 팰리스를 패배시키며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11명의 선발 멤버는 그들의 벤치(코칭스태프)처럼 정말 좋은 수준의 특징을 가졌었다. 이 팀은 이 때의 성적보다 아직 더 좋았던 적은 없다. 로날드 쿠만은 버질 반다이크와 오리올 로메우를 더해서, 포체티노부터 훌륭한 스쿼드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사우스햄튼은 그들의 마지막 10경기에서 오직 한 번의 패배만 있었다. 게다가, 2012년 프리미어리그 복귀하면서, 2013/14부터 16/17시즌까지, 각각 8위,7위,6위,8위로 마감했다. 그러면서 유스선수를 1군으로 키워내기 위한 두 갈래의 전략이 있었고, 혹은 상당한 금액으로 (선수들을) 팔아내고, 혹은 그에 상응한 대체자를 싼 값에 찾았다. 그러나 2017년 이래로, 이 클럽은 강등 위기에 처하는 것이 더 정기적인 양상이 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된걸까?

 


 

# 2010년대 이 후 사우스햄튼

 

| 황금기

사우스햄튼은 쿠만이 6위로 팀을 이끌었을 때,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이 클럽은 2009년 거의 쇠락해질 뻔 했지만, 마르쿠스 리프헤어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 비즈니스맨은 다음해 죽었고, 그의 딸 카타리나는 사우스햄튼을 떠났다. 2009년과 2014년 사이, 주도적으로 포체티노를 데려온 인물인 니콜라 코르테스에 의해 운영되었다. 2012년과 2014년 사이, 영입은 포체티노와 함께 합류한 폴 미첼에 의해 관리되었다. FA로 부터 데려온 레스 리드는 아카데미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을 담당했고, 또한 선수 이적에 영향을 미쳤다. 리드는 데이터 드리븐 분석과 영입 정책을 연결하는, 사우스햄튼의 유명한 블랙 박스의 제작을 진두지휘했다. 이것이 이 클럽의 황금기였다. 카타리나가 코르테스와 리드에게 클럽을 넘겼고, 과거에 베일, 월콧, 챔버스, 채임벌린, 루크 쇼, 워드 프라우스 등을 배출했던 아카데미가 생겼다. 

 

사우스햄튼의 중흥기를 이끈 포체티노.

미첼이 도착하기 전에, 그와 리드는 어떠한 작은 프리미어리그의 클럽이 성취해내지 못한 최고의 이적 시장 중 한 시기를 지휘했었다. 2014/15 시즌, 사우스햄튼은 사디오 마네, 셰인 롱, 두산 타디치, 라이언 버틀란드, 프레이저 포스터, 그라치아노 펠레를 영입했고, 알더바이렐트를 임대로 데려왔다. 이것은 큰 지출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쿠만의 성공의 기반이 되었고, 나중에 클럽은 재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다음 이적 시장에 (우리는) 그들이 반 다이크와 로메우를 데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비록 미첼과 포체티노의 토트넘으로의 이탈은 큰 타격이었지만, 리드는 후임으로 쿠만을 찾았다. 그러나 2014년, 사우스햄튼 쇠퇴의 씨앗이 심어졌다. 코르테스가 여전히 북극성 지표(팀이 가야할 방향을 설정)였지만, 그의 대체자 랄프 크루거는 누구한테나 조롱을 당했다. 과거 아이스 코치였던, 크루거는 2014년 이 클럽의 회장이 되었을 때 축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비록 그들의 최고 선수들의 정기적인 판매는 경악스러웠지만, 쿠만의 임명과 클럽의 영입정책은 결속력이 있었다.

 

| 위기

2014년과 2018년 사이, 클럽은 지속적으로 보다 더 큰 팀들에게 (선수들)판매하는 것이 강요되었다. 맨유로 떠난 루크 쇼와 슈나이덜린는 유스팀 출신이었고, 한편 빅6로 이적하는 숫자가 머지사이드로 이적하는 것보다 더 적으면서, 리버풀로의 판매는 늘 있는 일처럼 생각됐다. 그러나 그러한 (선수들의)교체는 항상 대처하기 힘들었고, 또한 클럽은 이적시장에서 특유의 감각을 잃기 시작했다. 2014/15년은 우수한 이적기간이었던 반면, 2016년부터 쭈욱 명백히 덜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부분적으로 감독의 잦은 교체 때문이었다. 비록 쿠만이 강렬하고, 종적인 스타일을 살짝 누그러뜨렸지만, 포체티노와 쿠만은 이러한 스타일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스쿼드를 구성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후계자 클라우드 퓌엘과 마우리시오 펠레그리노는 더 느리고, 수비적인 방식을 원했고, 한편 마크 휴즈는 단순히 소방수였다. 퓌엘은 클럽 레코드로 기록된, 1시즌동안 7번의 0:0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사우스햄튼을 공략하기 더 힘들고, 관전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여전히 그들은 중상위권 성적인 8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컵대회 결승에 도달했지만, 이러한 스타일로의 변화는 영입에 있어 혼란스러움을 주었다. 그렇게 너무 짧은 기간 동안에 감독 교체는 일관된 축구 철학을 바탕으로 스쿼드를 꾸리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였다. 

 

사우스햄튼 유스 출신의 마지막 재능, 워드 프라우스

그러면 정말로 그러한 상황 변화속에 영입은 더 나빠졌을까? 사우스햄튼의 팬들은 레미나, 카리요, 호에트와 같은 선수들을 데려왔던, 실패로 여겨지는 2017/18년 때의 이적 시장을 지적한다. 선수들은 감독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 수 있었다. 그리고 크루거의 축구에 대한 이해 부족은 많은 발언권을 가지고 있던 윌슨과 리드보다 감독에 의해 영입이 성사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2016년 이래로 클럽은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대니 잉스, 스튜어트 암스트롱, 카일 워커 피터스, 그리고 체 아담스를 영입했다. 이 영입들은 완벽히 실패인 것은 아니지만, 영입 비용에 견주면 그렇지 않거나, 가치가 하락하기도 했다. 아마도 아카데미에 대한 지원도 상당히 부족해졌을 것이다. 스테판도 꽤 괜찮은 선수지만, 워드-프라우스는 클럽이 배출한 마지막 찐 성공적인 선수였다. 추가로, 클럽은 루크 쇼 이후 양질의 이적료로 유스 재능들을 팔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벤 화이트 이적을 내버려두었다. 맷 크로커가 2020년 디렉터로 사우스햄튼에 다시 합류했을 때, 그는 몇몇 아카데미 시설이 등한시 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들 중 몇몇은 최적의 환경이 아님을 느꼈다 라고 애슬래틱에 설명했다. 이 두가지는 클럽 수익의 큰 줄기와 정체성을 빼앗었다. 그것이 랄프 하젠휘틀이 그의 전술 플레이북을 적용시키기 힘든 이유 중 하나이다. 한편 풋볼 디렉터, 크로커는 B팀을 23세 이하로 변화를 주면서, (유스)아카데미 조직에 새롭게 활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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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의 시작

2017년, 리페르는 가오 패밀리가 오너인 중국의 랜더 스포츠에 주요 지분을 팔았다. 리드가 떠났지만, 2019년이 되어서야, 막 후에서 상당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하젠휘틀이 이미 선수 대기석에 있었고, 가오 지셍은 스스로 회장직에 올랐다. 그러면서 크루거와 윌슨을 추방했고, 마틴 세멘스를 ceo로 승진시켰다. 세멘스는 모든 축구 문제를 살피기 위해 FA로 크로커를 다시 데려왔다. 이 리더쉽 그룹은 새로운 영입 수장, 마틴 클로버에 의해 보충되어졌고, 그들의 방침 또한 새로워졌다. 그들은 챔피언쉽 최고 재능과 빅클럽의 아카데미 유망주를 영입하길 원했다. 이러한 정책은 아담스, 아담 암스트롱, 티에리 스몰, 리브라멘토, 그리고 다니엘 시메우의 계약을 이끌었다.

 

크로커는 클럽의 훈련장과 아카데미 시설과 사우스햄튼의 넓은 관점의 윤곽이 그려진 철학과 원칙에 대한 목록이 담긴, 하젠휘틀의 전술 플레이북이 녹아드는데, 상당한 투자를 관장했다. 크로커의 재계약은 매우 의미가 있다. 그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아카데미 시스템을 이끌었고, 15세부터 20세까지 관장하는 유스 국제 축구 연맹의 FA's pathway의 수장으로 가기 전에, 쇼, 월콧, 등을 배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실을 맺는데 시간이 걸리며, 클럽은 안정성이 필요하다. 크로커와 글로버는 아카데미와 선수구성을 재조직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우스햄튼은 훨씬 더 오래 뇌리에 박힌 과거 4년 동안의 실수 혹은 강등을 피해야만 한다. 

 


 

글 티포(tifo)풋볼

사진 normann,kabuubi media 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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