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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축구에 대한 이야기-'놀라운 선수들을 배출하는 작은 국가'

hyucks 2024. 1. 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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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는 리버풀의 수비수 버질 반다이크가 주장을 달았고, 한편 그들의 전술적 영감 대부분은 어시스트 매니저 에드가 다비즈로부터 나왔다. 이 둘은 역대 네덜란드 주장들 이상의 존재감을 뽐냈지만, 약간 차이가 있었고, 수 많은 다른 반짝이는 이름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 출신일 지 몰랐다. 둠프리스, 데스트, 베르바인 역시 이들 국가에 속할 지 모르겠다. 이 선수들 모두 불과 인구 60만명에 불과한 작은 국가인 수리남 혈통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것은 남아메리카의 북동부 해안에서의 축구 심장부의 이야기이다. 네덜란드를 위한 수리남 혈통의 공헌은 필수적이었다.

 


# 수리남 축구를 월드컵에서 볼 수 있을까?

 

수리남 출신 축구 선수들

가장 유명한 빅네임은 루디 굴리트, 프랭크 레이카르트, 클라센 시도르프,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를 포함한다. 베이날둠이 리버풀의 2019년 챔스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 그는 네덜란드와 수리남이 조합된 국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세계 무대에서, 수리남에게 아주 많이 빚진 재능들은 결코 멀리 있지 않지만, 수리남은 아직 월드컵에 진출한 적이 없고, 현재 그들 자신의 프로리그를 가지지 못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앞서, 기자들은 네덜란드와 연결성을 추적하고, 수리남이 세계 축구 무대에서 그들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는지 듣기 위해 수리남을 방문했다. 파라마리보 시내 평범한 호텔 외곽 해질녘이었다. 헨리 시도르프가  수리남이 독립하던 해, 1975년을 회상 중이었다. 헨리는 그의 세대 중 가장 기술적인 미드필더 중 하나인 클라센 시도르프의 삼촌이다.

 

 

시도르프는 아약스, 레알마드리드, AC밀란에서 챔스를 우승했다. 또한 그는 1994년과 2008년 사이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87번을 뛰었다. 시도르프는 네덜란드로부터 수리남이 독립하던 해 태어났다. 헨리는 클라센의 아빠가 네덜란드에서 더 좋은 삶을 위해 어떻게 떠났는지 회상했다. 파라마리보에서, 헨리는 지역간 갈등이 있었음을 회상했다. 이미 네덜란드 말을 할 수 있었던 수천명의 수리남 사람들이 네덜란드로 갔고, 마찬가지로 군부 하의 역경을 피하기 위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부유한 가족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하층계급이었어요. 우리는 함께 거리에서 스스로 만든 플라스틱으로 만든 축구공으로, 혹은 테니스공으로 축구를 했죠. 나의 자매가 홀란드로 이주할 때가 기억납니다. 그녀가 나에게 보낸 첫번째 선물 중 하나은 제대로된 축구공이었요." 라고 헨리가 설명했다. 

 

클라센이 아기였을 때, 헨리는 10대였다. 그의 부모집에서 아기 클라센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잠을 잤다. 2살이 되었을 때, 클라센가 그의 엄마는 아빠가 있는 네덜란드에 합류했다. 시도르프는 논쟁의 여지없이 1990년대 가장 훌륭한 미드필더가 되었지만, 이주한 어떤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법은 그가 태어난 국가를 대표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와같이 유명한 이름들도 예외가 없었다. 이 명단은 아버지가 수리남 국가대표였던 레이카르트, 아버지가 수리남FA 멤버인 굴리트를 포함한다. 네덜란드 팀에서, 조정 또한 똑바르지 않았다.

 

1996유로, 다비즈는 거스 히딩크와의 불화로 토너먼트 때 집에서 보냈고, 한편 패트릭 쿨루이베르트는 수리남 대표팀에서 좀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헨리 시도르프는 1990년대 네덜란드의 흑인 선수들은 '수리남의 슴무원' 라고 불리게 되었다 라고 말했다. 몇몇 미디어는 부정적이었다고 그가 말했다. 언론들은 국가대표팀에서 수리남 선수들이 수리남의 주식인 갈색콩과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라는 점 그리고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다 라는 사실에 집중했다.  

 

이선수들은 수리남을 대표할 능력이 없었음에도, 유대감은 강력하게 남아있었다. 시도르프,클루이베르트, 다비즈 같은 선수들은 휴가로 방문했고, 때때로 지역사회 기금마련을 위한 올스타 시합에 등장했다. 지역 사회는 상당한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다. 수리남 정치 사범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하기 전에 1999년 네덜란드에서 마약밀매 유죄를 선고받은 과거 군부 정부 지도자인 'desire bouterse' 의 사법건, 그러나 그 이후 그는 항소했다. 수리남의 경제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악화되었다. 거기에 더해 물가와 실업자가 증가했다. 시도르프는 나라에 투자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그의 이름으로 지은 작은 경기장, 그리고 수년동안 유망주를 찾기 위한 유스 프로그램이었다. 최근에 네덜란드에서 살거나 태어났거나 한 수리남 출신 선수들을 위한 한 선택이 부각되었다. 특별한 스포츠 여권 소개되었는데, 이 말 즉슨 수리남 국가대표팀은 더 넓은 선수층을 의지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프로리그 만들다

수리남의 FA 본사는 수수한 회장의 방과 함께 국제경기를 주관하기에는 누추한 곳이다. 우리는 레플리카 셔츠를 파는 작은 가게에 들어갔다. 회장 'john'은 축구는 여기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 라고 말했다. 6팀이 포함되는 새로운 프로 리그에 대한 계획이 착수 중이다. 연맹은 첫시즌 심판과 물류 비용을 지불하면서, 유가증권으로 충당하려 할 것이며, 심지어 두번째, 세번째 시즌도 이어지길 바랄 것이다. 첫번째 시즌, 서포터들은 무료로 경기장에 방문하는 것이 허용 될 것이다. 라고 회장이 말했다. 

 

수리남 국내 리그 개발을 위한 욕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수리남에서 네덜란드로 향하는 현상이 점점 더 커지는 와중에 세대간 갈등에 대한 염려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그 나라에 친숙하지 않은 선수들을 매료시키기 더 어렵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프로리그로 성장하는 모양새를 갖춤에 따라, 수리남 FA는 18세 이하 재능들 혹은 그들의 발전을 높일 수 있는 유럽 혹은 미국으로 가려는 18세 이상의 선수들을 설득했다.

 

법이 바뀐 후에, 수리남 FA는 신속하게 영입에 나섰다. 하셀바잉크, 지미 플로이드, 웨스트 브롬 위치 수비수 출신이자 네덜란드 21세 이하에서 뛴 적이 있는 라이언 동크를 포함한 수리남의 선수들은 현재 수리남 시니어 팀에서 뛰고 있다. 스카우팅 자문 그룹은 기꺼이 자국을 위해 뛰어 줄 수 있는 이런 선수들을 찾기위해 네덜란드에 걸쳐 활약 중이다. 한편 1990년대 세대는 수리남을 위해 뛰고 싶어하는 갈망을 내비쳤다. 연합은 현재 그 호소에 대해 현실적이라 판단한다. 

 

월드컵을 향한 꿈

 

최근 피파 랭킹에서, 수리남은 에디오피아와 세인트 키즈 네비스 사이 139위에 랭크되었다. 과거 네덜란드 국가대표였던 아론 윈터가 지휘하게 된 수리남은 네덜란드에서 스쿼드를 구성하는데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이런 선수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026년 월드컵에 앞서, (수리남 축구대표팀을 구성하는데)희망과 매력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있다. 수리남은 북중미카리브 지역예선을 통과하더라도, 2026월드컵 개최국은 캐나다,미국,멕시코 3개국이다. 이들은 월드컵 진출권을 자동으로 획득할 것이다.

 

한편 48개국으로 확장된 포맷은 북중미-카리브를 위한 더 많은 자리가 있을 것임을 의미할 것이다. 이 말 즉슨 파나마,코스타리카,그리고 수리남과 같은 나라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2026년 월드컵은 우리에게 가장 (진출을 위해) 손쉬운 기회일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가야만 해요. 그들의 일부가 될 거에요. 수십년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월드컵을 진출을 위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라고 존이 말했다.

 


출처:티포(tifo)풋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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