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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윌셔에게 무슨 일이? (feat.은퇴)

hyucks 2023. 2. 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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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잉글랜드 축구의 미래가 될 예정이었다. 그는 영국 선수에게 보기 힘든, 스페인 혹은 남미 출신 선수들에게 종종 발견되는 기술적인 능력과 시야를 소유했다. 거기에 더해  불과 24살의 나이에 주장으로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그는 26살에 아스날에서 '프리'로 풀려났고, 불과 30살에 은퇴했다. 대체 잭 윌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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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했던 재능, 잭 윌셔

 

슈퍼 유망주

어린 시절 윌셔는 파올로 디 카니오 심취한 웨스트햄 팬이었다. 그러나 그는 2001년 아스날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그 땐 비에이라, 앙리를 위시한 아스날의 막강한 시기를 볼 수 있는 때였고, 클럽이 하이버리로부터 새로운 구장 에메리츠 시대로 바뀌어 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아스날의 젊은 선수에게는 완벽한 시기였다. 새로운 경기장 건설은 클럽 이적 활동을 제한했다. 이 말 즉슨 1군 진입의 기회가 어그러지는 것이 높은 확률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윌셔는 블랙번전 교체로 16살에 데뷔했다. 그렇지만 과거 많은 어린 아스날 유망주들처럼, 거대한 영향력의 시발점은 리그컵에서였고, 그는 셰필드 전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매듭지으며, 박스 가장자리로부터 득점했다. 심지어 그는 첫번째 프로 계약을 사인하지 않았지만, 그의 성인 커리어는 이미 진행중이었다. 2009/10 시즌,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더 수준이 낮은 팀인 볼턴 임대를 통해 유익한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다가오는 시즌 그는 되돌아왔고, 아르센 벵거의 1군 레귤러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챔스에서 그의 능력을 규정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것은 2011년 2월 이었으며, 아스날이 펩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비긴 챔스 16강전이었다. 

 

잭 윌셔vs바르셀로나

그 경기에서 2-1로 승자가 된 벵거의 팀이 주목을 받았지만, 윌셔의 공헌은 모든 사람들 기억속에 남는 것이었다. 샤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로 구성된 3미들을 상대로, 그는 태클을 뛰어넘고, 필드 위로 볼을 운반하면서 아스날 모든 공격의 엔진과 같았다. 이것은 샤비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수년이 지나 그는 "쉽게 잊혀질 만한 퍼포먼스가 아니었죠" 라고 말했다. 좀 더 에둘러 표현했지만, 과르디올라 역시 칭찬했다. "우리도 2군에 그와 같은 선수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윌셔는 그의 클럽에서 우승에 대한 어떠한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과르디올라의 코멘트는 영국 미디어에 의해 가볍게 다뤄졌다. 아마도 (그들은 그 발언이) 불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듯 했다.

 

특출난, 그러나 꼬여버린 커리어

기술적 진화는 잉글랜드 선수들의 프로필이 변화시켰다. 그러나 스타일과 사이즈 면에서 샤비나 이니에스타 같이 비교될 수 있는 영국에서 태어난 미드필더를 찾는 것은 아직 드물다. 프리미어리그는 여전히 제라드와 램파드의 시대였고, 172cm의 윌셔는 차이를 제공했다. 과거 기술적인 잉글랜드 미드필더들이 내구성 면에서 축복을 받았던 반면, 윌셔는 (내구성이) 취약했다. 그것에 대한 첫번째 신호는 그의 첫 풀시즌 끝날 즈음에 왔다. 2011년 여름 에미레이트 컵에서.

 

윌셔는 결과적으로 수술이 필요했던 발목 인대 손상을 입었다. 19세 때, 이미 종말의 시작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좌절을 겪었다. 2011/12 시즌, 그 수술은 새해 무릎 수술로 이어졌다. 그가 회복될 때까지, 거의 18개월 동안 프리미어리그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운의 연속이 시작되었다. 

 

2011년과 2018년 사이, 그는 결코 프리미어리그에서 시즌당 30경기 이상 등장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재능은 주기적으로 밝게 빛났다. 2014년과 2015년, 그는 BBC선정 올해의 골을 수상했다. 첫번째 골은 노리치 전 불가능한 복잡한 움직임 속  끝에 영리한 마무리였고, 두번째 골은 웨스트 브롬위치 전 무시무시한 하프 발리 골이었다. 

 

2016 유로 프랑스 전, 그는 뛰고있었던 잉글랜드 선수 중 최고의 한 명이었다.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넣은 두 골 모두 그의 발 끝에서 비롯되었고, 그 중 두번째 골은 호지슨 재임기간 중 가장 멋진 골 중 하나로 남았다. 그의 클래스는 (오래) 지속되었고, 그의 괴짜스러움 역시 그랬다. 2015년 아스날이 FA컵 우승 후, 벙거지 모자를 쓰고 썬글라스를 쓴 윌셔는 라이벌 토트넘을 조롱하는 노래로 아스날 팬들을 불러모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커리어 전성기였지만,  아스날가 윌셔 모두 그날의 감정은 결코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는 2016/17 건강을 찾으면서 본머스로 임대되었다. 그렇지만 1년 후 아스날에서 방출되었다. 그는 스피드와 다이나막함이 떨어진 쇠퇴하는 선수였다. 그는 웨스트햄에서 2년, 본머스에서 추가로 12개월을 더 보냈고, 그리고나서 마지막 활동으로서 덴마크에서 하프 시즌을 보냈다. 통들어 14년의 시간과 불과 16살에 프로 데뷔를 시작했음에도, 그가 2022년에 은퇴할 때까지 성인무대에서 300경기를 채 뛰지 못했다. 윌셔는 종종 정말 좋은 선수란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의 커리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의 재능과 불운은 뒤얽혀서 그런 걸까? 

 


# 은퇴

 

일설에서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그를 부상에 노출시켰다 라고 생각한다. 코치들은 그를 두려움을 모르는 선수로 묘사했고, 그는 전방으로 볼을 운반하는 것과 볼 탈취를 위해 과감한 태클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선수로서 윌셔에게 정의된 그러한 방식은 궁극적으로 그를 해쳤다. 그리고 그의 커리어를 중단시켰다. 

 


원글 티포(tifo)풋볼

사진 Dsanchez17,EA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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