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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9)맨유는 어떻게 트레블을 달성했나?

hyucks 2023. 2. 2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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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9 맨유 시즌의 시작은 웸블리에서 프리미어리그 디펜딩 챔피언 아스날을 상대로한 패배였다. 커뮤니트 쉴드가 열린 8월의 시작한 그날, 알렉스 퍼거슨이 그의 클럽을 영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이끌 것이란 암시는 전혀없었으며, 여전히 그만한 성취는 없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퍼거슨, 1998/99맨유를 챔피언으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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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맨유

1990년대 중반, 퍼거슨은 맨유 영입에 좌절하고 있었다  클럽은 주식회사였고, 주주들의 권한속에서 클럽 야망에 대한 균형을 찾아야 했다. 이것은 지난 여름 불과 12m을, 그리고 또 지난 여름 고작10m을 지출한 맨유가 통상적으로 리버풀, 아스날, 뉴캐슬, 경우에 따라서 블랙번 그리고 비슷한 급의 유럽의 모든 팀들보다 더 많이 지출해야함을 의미했다. 

 

퍼거슨의 리빌딩

1998년 여름 그 트랜드는 깨졌다. 네덜란드 센터백 야프 스탐이 PSV로부터 15m에 계약했고, 스웨덴 윙어 제스퍼 블롬크비스트는 파르마로부터 6m에 데려왔다. 퍼거슨의 핵심 타겟은 아스톤빌라의 공격수 드와이트 요크였고, 8월 중순까지 맨유가 그 거래 경쟁에서 미뤄져야만 한다는 사실보다 영입 제약이 있던 시대를 더 잘 묘사할 것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 지출이 다른 회계 기간으로 연기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1군 강화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맨유는 지난 10년에 걸쳐 부침을 겪었다.

 

퍼거슨은 두개의 주요 결론으로 팀을 떠나있었다. 한가지는 대륙의 팀들은 잉글랜드 팀들보다 훨씬 잘 볼을 소유했다는 것. 두번째는 최고의 팀들은 전술적으로 유연하며, 단지 선발로만 팀을 구성하지 않고, (백업멤버의 중요성), 다양한 롤이 가능한 선수단을 갖췄다는 것. 그 해 여름이 끝날때 쯤, 그는 몇가지 조합이 가능한 4명의 공격수를 보유했었다. 미드필드에는 월드 클래스와 스페셜리스트가 조합을 이루고, 그 뒤에 새로운 강력한 수비진과 뛰어난 키퍼 피터 슈마이켈이 있었다. 이 선수단은 1점차로 아스날로부터 다시 프리미어리그를 낚아채기 충분했다.

 

우승의 전조

1.그들은 시즌을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12월과 5월 사이 계속 패배가 없었다. 그들의 축구는 유쾌했고,다양했다. 여전히 역습을 할 수 있었고, 측면을 통한 위협과 배달은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드와이크 요크와 앤디 콜, 그들은 진귀한 스트라이커 조합이었다. 콜은 훌륭한 속도와 기술을 갖춘 뛰어난 피니셔였다. 요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갖췄으며, 최고수준의  골스코어러였을 뿐 아니라, 공중 지배자이자, 훌륭한 시야 또한 갖췄다. 

 

2.결승전 뉴캐슬을 상대로 우승을 확정지은 FA컵, 맨유 상승세는 연말 그들의 일궈낸 업적의 전조로 보였다. 그들은 퍼거슨이 구상한 전술적 술책으로 필립 네빌이 졸라를 맨마킹하면서, 첼시를 탈락시켰다. 그리고 4라운드 솔샤르와 요크의 역전골로 리버풀을 패비시킨 후, 재경기로 치뤄진 준결승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 상대에게 페널티킥을 내주고, 대략 1시간동안 10명이 뛰면서 120분의 혈투 끝에 아스날을 물리쳤다.

 

3.맨유는 영국 축구를 선도했다. 예를 들어 칸토나의 성공은 딥 라잉 포워드를 어떻게 막아야하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한 다른 프리미어리그팀들 덕분이었다. 유럽에서, 그런 이점이 없었다. 잉글랜드가 스피드와 파워를 강조한 반면, 유럽 대륙은 상대를 무력하게 하고, 볼소유를 유지하는 능력을 특별하게 생각했다. 

 

챔피언스리그

맨유는 점점 1998/99(전설의 팀)으로 향해갔다. 그들은 작년 챔피언스리그 16강에 그쳤지만, 그 시즌 우리는 그들이 과거 유럽 대륙과 (전술적으로)상이했던 결점을 고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별리그에서, 맨유는 바이언과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짜릿한 두 번의 무승부를 거두며 경쟁을 벌였다. 바르셀로나와의 두 경기 모두 3:3으로 마쳤고, 두번째 경기는 맨유가 국제적인 클래스의 팀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날 밤 그들의 두번째 골, 요크의 스텝오버 후 침투하는 콜을 향한 패스가 있었고, 그는 다시 그의 스트라이커 파트너로부터 볼을 받았다. 그리고 즉시 리턴 패스를 내주면서, 콜은 대회 역사상 최고의 골 중에 하나를 만들어냈다.  

 

4강전, 맨유는 이탈리아에서 인터밀란을 상대로 두 골을 리드하며 경기를 장악했고, 퍼거슨은 호날두를 억제하는 것을 돕기위해 로니 존스를 미드필드로 밀어넣으면서, 전술적 책략 하나를 선보였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다음라운드로)진출했고, 유벤투스와 만났다. 올드트레포드에서 1차전 전반전, 유벤투스는 완전히 더 나은 팀이었고, 한 골 이상 넣을 수도 있었다. 퍼거슨의 측면 미드필더들, 베컴과 긱스는 정말로 윙어로서 운용되었고, 그러면서 맨유의 미드필드들은 수적으로 불리한 채 남겨졌다. 이 때, 그들은 컨트롤을 되찾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 하프타임 후 베컴은 안 쪽으로 이동했고, 좀 더 보수적으로 플레이했다.반면 긱스는 좀 더 공격적인 롤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는 끝날 무렵 동점골을 넣었다. 

 

4강 2차전 양 팀은 결정적인 경기를 치뤘을지 모른다. 눈 깜박할 사이에 두 골차게 되었는데, 로이 킨과 요크가 하프타임까지 맨유가 (득실에서) 동등한 수준이 되는 득점을 한 것이었다. 또한 킨은 결승에서 결장을 확정짓는 옐로우 카드를 수집했다. 앤디 콜이 동점을 끝내기 위해 텅빈 골네트로 다가갈 때 쯤(3:2로 역전!), 폴 스콜스 또한 (경고)기록에 남았고,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 전에서도 그러면서, 퍼거슨이 첫번째로 선택하는 미드필더가 사라졌다.

 


# 결론:트레블

 

누캄프에서 그 유명한 밤에,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했다. 테디 쉐링엄의 후반 동점골과 올레 군나르 솔샤르의 마지막 순간 결승골은 오늘날 축구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또 역시 좌절하면서 잔디를 쿵쿵 두드리는 사무엘 쿠포르의 이미지도 그랬다. 그날 밤은 서브 멤버들의 날이었다. 쉐링엄과 솔샤르는 완벽히 교체로 활용되었다. 퍼거슨은 니키 버트와 베컴이 짝을 이룬 임시병통의 중앙 미드필드 조합을 구성했고, 블롬크비스트와 긱스도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그것은 팀 풋볼이었다. 과거 잉글랜드 방식처럼 경직된 게임 플랜 속 베스트11 만을 내보는 것은 아니었다. 맨유는 그 해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도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원글 티포(tifo)풋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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